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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나는 복음
grace · 2026년 9월 19일길 위에서 만나는 복음
필그림 저니, 흩어지는 사람들 — 현대 선교의 새로운 풍경

길을 잃어본 사람이 곁에 설 때
우리는 길을 잘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으며, 앞서 걸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선교사라고 하면 왠지 그런 사람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유튜브 채널 《The Hidden》에서 이재열(조셉) 전파선교사의 간증을 들으며 조금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그 역시 인생에서 길을 잃었던 사람이었다.
방황하고, 절망하고, 무너졌던 시간을 지나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여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방황하는 젊은이들 곁에 선다.
자신이 찾은 정답을 가르쳐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지나고 있는 어둠을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던 사람이 길을 잃은 한 사람의 곁을 걸었습니다.
나는 이 한 문장에 ‘필그림 저니, 흩어지는 사람들’이라는 선교 프로젝트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
젊음은 언제나 희망으로만 가득한 시기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열심히 살아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관계에서 상처받고, 기대했던 일이 무너지며, 스스로가 아무 쓸모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목표를 세우라고. 더 노력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그러나 절망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그런 말은 너무 멀리서 들려올 때가 있다.
정작 필요한 것은 훌륭한 충고가 아니라, 지금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는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조셉 선교사의 이야기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고통을 모르는 자리에서 청년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도 길을 잃었던 시간을 지나왔기에 방황하는 젊은이의 마음을 쉽게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고 다그치기보다, 왜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되었는지 들어줄 수 있다.
내가 먼저 길을 찾았으니 따라오라고 말하기보다, 아직 걷기 어려운 사람의 속도에 맞출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상처를 지나온 경험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통을 겪은 일이 그 자체로 좋은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무너졌던 시간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으로 바꾸어간다면, 그곳에는 분명 새로운 의미가 생겨날 것이다.
함께 출발하는 순례
‘필그림 저니’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중년의 선교사와 젊은 청년이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다.
그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색한 침묵이 흐를 수도 있고, 한동안은 그저 발밑의 돌을 바라보며 걷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청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실패와 상처, 두려움과 후회에 대해서.
선교사는 걸음을 늦춘다.
서둘러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나는 이 장면을 상상하며 선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시 살아갈 힘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행하는 것.
이것이 필그림 저니에서 내가 발견한 선교의 모습이다.
그 길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걸었느냐가 아닐 것이다.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게 되었는가.
한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게 되었는가.
혼자라고 생각했던 청년이 자신에게도 함께 걸어줄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가.
순례는 발로 걷는 길이지만, 때로는 마음속에서 훨씬 더 긴 여행이 시작된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성경에도 길을 잃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었던 두 제자는 십자가 사건 이후 모든 기대가 무너진 채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오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즉시 밝히지 않으셨다.
먼저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물으셨고, 그들이 슬픔과 실망을 이야기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성경을 풀어주시며 그들이 겪은 일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끄셨다.
누가복음 24장의 이 장면에서 나는 예수님의 첫 행동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분은 낙심한 사람들의 길에 먼저 동행하셨다.
예수님은 길을 잃으신 분이 아니다. 그러나 길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있는 자리로 찾아오셨고, 함께 걸으셨다.
나는 조셉 선교사가 청년들과 순례길을 걷는 모습에서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린다.
그가 청년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청년들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걸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다.
그리고 자신이 절망 속에서 어떻게 다시 소망을 발견했는지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만남을 통해 청년들은 자신에게도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발견할지 모른다.
상처가 누군가의 위로가 될 때
고린도후서 1장 4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난 중에 위로하시는 것은 우리가 받은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려는 뜻도 있음을 말한다.
이 말씀을 읽으면 고통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상처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지나온 아픔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받았던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는 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기에, 나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누군가 내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었기에, 나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곁에 머물 수 있다.
누군가 내게 살아갈 소망을 보여주었기에, 나 역시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아직 다른 길이 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위로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로 이어진다.
조셉 선교사의 회복을 바라보며 내가 생각한 것도 이것이다.
한 사람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신처럼 방황하는 청년들의 친구가 되어 길을 걷는다.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것이다.
흩어지는 사람들, 이어지는 마음
이러한 선교의 모습을 생각하면 교회에 대한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우리는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모으는 일에 익숙하다.
좋은 예배를 준비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물론 함께 모여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는 일은 소중하다.
그러나 교회의 사랑이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그들이 외로워하는 자리로, 길을 잃고 주저앉은 곳으로 흩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곳에서 필요한 것은 언제나 거창한 사역이나 특별한 능력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
서둘러 판단하지 않는 마음.
필요한 순간에 기꺼이 내어주는 시간.
그리고 함께 걷겠다는 작은 약속.
이런 만남은 교회 밖의 길 위에서도, 직장과 가정에서도, 온라인의 작은 공간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우리 교회의 갤러리도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을 때, 그 이야기를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 곳.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아도 되고, 회복이 더디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곳.
잘 걷는 사람만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있는 사람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 곳.
서로의 삶을 통해 배우고, 받은 위로를 다시 나누는 곳.
그런 작은 만남들이 이어진다면 우리의 교회 역시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길 위에서
순례길에는 목적지가 있다.
하지만 순례의 의미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함께 걸었던 사람.
말없이 곁을 지켜주었던 시간.
처음으로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았던 순간.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혼자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시간.
그런 것들이 오히려 여정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을지 모른다.
나는 조셉 선교사의 간증을 통해 현대 선교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선교란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이 길을 모르는 사람을 이끄는 일만은 아니다.
자신도 길을 잃어보았기에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기꺼이 나누며, 그가 다시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일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동행이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구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에서 구원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길에 잠시 함께 설 수 있다.
서로의 짐을 조금씩 나누어 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복음의 모습이 아닐까.
길을 잃었던 사람이 길을 잃은 한 사람의 곁을 걸었습니다.
그 길에서 한 사람은 자신이 받은 위로를 나누고, 다른 한 사람은 다시 걸어볼 용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조금씩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모여서 믿음을 배우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지 않을까.
다시 세상으로 흩어져, 누군가의 곁을 걷기 위해서.
선교는 때로 누군가의 인생에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시 길을 찾을 때까지 함께 걸어주는 사랑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