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동네에 왔던 것은 한겨울이었다.

집 근처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어딘가 덜 정돈되어 보였다. 도로 주변은 조금 삭막했고, 나는 그 풍경만으로 이 동네를 꽤 빨리 판단했다.

여긴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인가.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사는 거리도 있었고, 가게도 있었고, 나름의 생활과 온기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첫인상은 오래 남았다. 나는 입구에서 본 몇 장면으로 그 안쪽까지 미리 정해 버렸던 것 같다.

그 뒤로 이곳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도서관이었다.
책을 빌리고, 도서관을 나와 집까지 걸었다. 그때도 계절은 겨울이었고, 기억 속에는 찬 공기와 조금 쓸쓸한 길의 인상이 남아 있다.

그러다 몇 달 뒤 다시 그 동네를 걸었다.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곳처럼 보였다.

가족들이 함께 걷고 있었고, 연인들이 나란히 길을 지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고, 누군가는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아주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 밝아 보였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좋은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거리의 모습이 크게 바뀐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달라진 것은 내 쪽에 가까웠다.

예전에도 그 사람들은 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예전에도 누군가는 손을 잡았고,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저녁을 준비하며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 사이 몇 권의 책을 읽었다. 사이토 히토리의 책도 읽었고, 어니스트 홈즈와 네빌 고다드의 책도 읽었다. 하지만 어느 한 권의 책이 나를 바꾸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러 경험이 쌓였고, 생각이 조금씩 흔들렸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요즘 나는 지옥이라는 것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반드시 어떤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주어진 현실만이 전부라고 믿어 버리는 마음도 하나의 지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내게 없는 것,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 원하는 만큼 갖지 못한 것에 시선을 고정하다 보면 그 너머를 보지 못한다.

하나님이 이미 열어 두신 길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길을 보지 못했다는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이미 주셨다.

기쁨도, 사람도, 가능성도, 앞으로 걸어갈 길도.

그런데 나는 한동안 내가 가진 현실의 테두리를 너무 오래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부족한 것을 세고, 아직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 세상을 좁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시선이 조금씩 바뀌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와 이 동네를 걷다가 짧은 터널을 지나게 되었다.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터널 위에 푸른 고래가 떠 있었다.

파란빛으로 반짝이는 고래였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내가 예전에 이 길을 걸을 때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날은 잠시 멈춰 서서 고래를 바라보았다. 사진도 찍었다.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고래가 그날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제야 위를 본 것이다.

요즘 들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말씀이 전보다 다르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이 말씀을 모든 필요가 채워지는 상태에 가깝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하나님 안에서 이미 내게 주어진 것이 있다는 것. 내가 아직 다 보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 눈앞의 현실보다 더 넓은 길이 이미 열려 있다는 것.

믿음은 없는 것을 억지로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다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동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도로도 그대로였고, 건물도 그대로였고, 사람들의 일상도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곳이 밝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가 행복으로 보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따뜻해 보였고, 검은 터널 위에는 푸른 고래가 있었다.

행복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길도 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곳에 있었다.

나는 다만 조금 늦게 보았을 뿐이다.